왕걸, 고구려벽화 원 모습 생생히 살려내
왕걸, 고구려벽화 원 모습 생생히 살려내
◆ 무덤벽화 레플리카 타고 고구려사회로 시간려행 진행중
◆ 벽화의 색채 복원작업도 하면서 완정한 화책출판 준비도
[길림신문] 2010-04-20
고구려가 수도를 환인 오녀산성에서 집안 국내성으로 옮긴지도 올해로 2000년 하고도 7년이 넘는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춤무덤, 씨름무덤, 다섯무덤 같은 유명한 벽화무덤들이 모두 국내성 지역에 있다. 국내성에는 광개토태왕비를 비롯, 태왕릉, 장수왕릉(將軍塚)같은 1만기가 넘는 고구려무덤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고구려 무덤벽화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지 근 10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심각한 훼손과 퇴색이 계속되여 벽화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고있는 이때 고구려 고분벽화는 대부분이 엄격한 보존관리를 요구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있어 실물감상이 매우 어렵다.
이에 더해 1세기전 발견된 이후, 외부에 오래동안 공개된데 따른 훼손 또한 극심한 상황이다.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模寫圖)가 근년 들어 각광받고있는 리유가 바로 이때문이다. 모사도란 글자 그대로 벽화 실경을 그대로 그림으로 옮긴것으로서 발견 당시 생생한 모습이 담겨있다. 벽화의 《본 모습》을 생생히 회복시킨 모사도(레플리카, 模寫圖)를 통해 고구려 사회로 향한 시간려행을 떠날수 있게 한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집안시 유림진 주선촌의 왕걸(48세, 압록강경제문화발전촉진회 부회장)씨다.
조선족마을에서 태여나 소시적 조선족소꿉친구들과 함께 벽화가 그려져있는 무덤군에서 숨박꼭질하면서 고구려벽화에 대해 특이한 감정을 가지게 됐다는 왕걸은 어려서부터 벽화그림을 본따 그림을 그리다보니 자연 미술을 좋아하게 되였다고 했다. 처음에는 식장이나 옷장같은 가구의 유리문에 그림을 그렸는데 개혁개방이 시작되면서 한국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자 전문 고구려벽화를 그리게 되였다. 결혼한 그해부터 고구려벽화를 전문 그리기 시작했으니 올해까지 20년도 더 되는데 관광객을 대상하여 이미 수천폭을 그렸다고 했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로 이루어진 사신(四神)은 동서남북의 네 방향, 춘하추동의 네 계절, 하늘사방의 28별자리와 관련있는 존재이며 벽사(?邪)와 음양조화(陰陽調和)를 뜻하는 신령스러운 동물인데 왕걸의 손에서 레플리카로 되살아나 조상을 기리는 동아세아의 수많은 려행객들의 마음속에 심어지고있다.
고구려벽화에 대한 지식면을 넓히기 위해 왕걸은 친구와 지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자료와 책을 많이 얻어들였다. 그중 1966년 일본 도꾜에서 출판한 대형화책 《고구려벽화》는 현재 실물로는 영원히 되찾아올수 없는 고구려벽화의 원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그 색채도 2000년전의 그림이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선명하고 아름다워 경탄을 금할수 없을 정도다.
이런 생생한 사진화면을 그림으로 살려내 오랜 세월 자연적 혹은 인위적 파괴를 입어 일부분 떨어져나갔거나 완전히 훼손된 부분의 모습을 회복하는 작업에 장기간 살손을 대온 왕걸씨. 그의 모사기법은 이미 아주 완숙한 정도에 이르러 고구려벽화홍보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있다.
고구려벽화에 대한 리해를 더 깊이 하기 위해 돈황벽화에 대해서도 연구했다는 왕걸은 비교연구를 통해 돈황벽화에 등장하는 만물상은 비록 다양하지만 대부분 신적존재로 묘사된데 반해 고구려벽화에는 인간의 생활상도 핍진하게 대량으로 그려져있다면서 친근감이 훨씬 더 진하게 풍겨나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집안고구려벽화는 내용도 풍부하지만 색채도 눈부시고 기교도 대단하다면서 돈황벽화와 비길 때 전혀 손색이 없으며 오히려 점수를 더 얹어주는게 합리할것이라고 했다. 단지 수량상 돈황벽화에 뒤질뿐이지 그림의 내용이나 당시의 삶을 반영한 깊이와 넓이나 그림기교나 그림에 사용한 재료나 모든 면에서 돈황보다 우수하다는것이다. 한편 고대 벽화예술을 말할 때 《서북에 돈황이 있다고 한다면 동북에는 집안이 있다》고 하는 말은 절대 과장된 용어가 아니라고 했다.
전 유림진에 원래 그림을 그리고 석각과 뿌리조각을 하는 사람이 조선족 미술교원 한사람밖에 없었는데 후에는 자기까지 해서 모두 둘이 됐다고 했다. 조선족마을에서 살면서 조선족들과 두터운 감정을 맺은 그는 친구도 거개 다 조선족이다. 우장복이라는 조선족친구는 옥석조각을 하는데 왕걸은 전문적으로 그한테서 옥석같은 조각재료를 제공받는다.
왕걸의 조각은 전부가 고구려와 관계되는 작품이다. 례컨대 호태왕비조각같은것은 글자 하나 빠짐이 없이 실물을 닮아 려행객들의 사랑을 받고있으며 지어 고구려연구학자들의 선호물로도 되었다.
왕걸은 이런 미술활동을 통해 고구려문화의 전파자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유감없이 감당하고있다.
그는 현존 벽화에 대한 연구와 참고자료와 완숙한 기법으로 훼손된 부분의 벽화를 모사도로 원상복구하고 그 원 색채도 회복하는 작업을 하면서 무용총수렵도 등 대표적무덤벽화를 중심으로 폭이 10메터 되는 긴 모사도를 창작하였는데 작년 5월 한국에서 열린 고구려예술작품전시회에 참가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한국미술계의 대표적인 격주간지 《미술신문》에 옹근 한면의 편폭으로 전문 소개되였다. 그 영향으로 금년 10월에 열리는 한국조계사 불교 100주년 기념행사에 작품을 보내달라는 요청도 받은 상태이다.
고구려벽화의 훼손부분과 색채를 회복하여 비교적 완정한 화책을 출판하는게 오래전부터 꾸어온 꿈이라면서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자기는 지금 만전을 기하고있다고 했다.